결혼 3년차 결혼기념일에 부부싸움으로 서로의 밑바닥까지 드러냈던 날. 낮에 일어나 우울한 마음을 이끌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햇빝을 쐬었다. 우울증에는 운동과 햇빛 만한 것이 없더라.
신길역의 샛강다리를 지나 샛강 생태공원으로 내려가자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래, 새나 찍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90mm macro 렌즈로 갈아끼운 후 새를 찾아보는데 정말 콩알만하게 보이는 새들. 아 오늘 정말 뭔가 안되네...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원 산책로에 오리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 새하얀 오리. 좋다.
따스한 햇살에 몸을 녹이려는지 수풀로 들어가 앉아버리는 오리. 두 쌍이 사이좋게 앉아 있다. 오리의 하얀 깃털 색이 너무 예뻐서 멍하니 바라보다 사진을 마구 찍는다. 우리 아이를 데리고 왔다면 좋다고 소리를 질렀을텐데. 와이프와 싸운 것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멍하니 오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 오리들도 저렇게 사이 좋게 지내는데, 우리는 밤새 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즐길 시간도 부족한데, 왜이렇게 싸우고 미워하고 짜증내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바보 같았다.
다음엔 사이 좋게 우리 식구들 손 잡고 와야지. 우리 아이에게 부모의 갈등이 아닌 화목한 모습을 보여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부부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앞으로는 이 오리들을 생각하며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겠다. 내년 결혼기념일엔 네 식구가 행복한 날을 보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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